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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훈 교수의 맛있는 CS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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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천쌀과 보르도와인: 지리적 표시제 (1). 작성자 문정훈 작성일 2016.10.04
제가 미국에 살 때 한인 마트에 이천쌀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 쌀은 이천쌀이 아니었습니다. 여기서 '이천쌀이 아니다.'라고 말을 하려면 먼저 무엇이 이천쌀인지를 규정해야하고, 또 이천쌀이라는 명칭을 아무렇게나 쓰면 안된다는 규정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천쌀은 반드시 이천 지역의 사질양토에서 '추청'이라는 품종으로 100% 계약재배 생산한 쌀로 반드시 정부양곡 벼 1등급 이상만 사용해야 합니다. (더불어 추가적인 규정들이 있습니다. 예컨대 토질의 ph에 대한 규정도 있습니다.) 그래야 이천쌀입니다. 이 규정을 지켜야지만 '이천쌀'이라는 이름을 쓸 수 있고, 그 이외에는 절대 '이천쌀'이라는 표현을 쓸 수 없다고 법이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제도의 이름이 '지리적표시제'입니다.

유럽에도 유사한 규정이 있는데, 그 출발은 프랑스의 와인입니다. 프랑스 와인이 전 세계적인 인기를 얻게 되자 이를 모방하는 짝퉁들이 생겨나게 되고 이를 방지하고자 만든 프랑스의 제도가 원산지 관리제 (AOC:Appellation d'origine controlee)이고, 이 제도를 EU가 유럽의 '지리적표시제'의 원형으로 삼습니다. 프랑스의 AOC에 등록된 대표적인 와인들은 보르도와인, 부르고뉴와인, 샴페인 등이 있습니다. 즉, 보르도와인이라는 이름을 쓸려면 보르도 지역에서 와인을 생산하며, 동시에 그에 합당한, 규정에 맞는 품질 관리를 해야지만 보르도와인이라는 이름을 쓸 수 있다는 겁니다. 부르고뉴와 샴페인도 마찬가지의 규정을 적용받습니다.

 
<그림 1> EU의 지리적표시제 인증마크와 적용된 농식품들


EU의 지리적표시제는 크게 세가지의 인증으로 나뉘어 지는데 각각 PDO(원산지 보호제), PGI(지리적 표시 보호제), TSG(전통 특산품 보증제)가 그 세가지 인증입니다. 위 그림의 왼쪽에서 오른쪽순으로 각각 해당됩니다. 이 지리적표시제는 신선 농산물, 가공식품, 술, 치즈 등 다양한 식품에 적용됩니다.

PDO는 가장 까다로운 인증제도입니다. 프랑스의 AOC를 가져와 만든 제도입니다. 어떤 식품(농산물 포함)을 만들 때 그 상품의 품질이나 특징이 특정 지역의 기후, 역사, 토양에 본질적으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야 하며, 원재료의 생산 및 가공 등의 전과정이 전적으로 그 지역에서 이루어 질 때 이 PDO인증을 받을 수 있습니다. 단 이 인증은 해당 요건을 맞추는 제품이라면 그 인증마크를 누구나 쓸 수 있도록 열려져 있습니다.

PGI는 PDO에 비해서는 좀 완화된 규정입니다. 예컨대 생산 자체는 반드시 해당 지역에서 생산을 하되, 원자재는 다른 지역에서 와도 인정은 받을 수 있다는 점이 다릅니다. 즉, <그림 1>에 첨부된 사진에 보면 Kerisac이라는 브랜드의 사과와인은 자신이 브레타뉴의 사과와인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전통의 제품인데 PGI 마크를 붙이고 있지요. 그런데 실은 이 Kerisac은 브랜드명이 아니라 이 사과와인을 오래전부터 생산해온 프랑스 서부 브레타뉴의 어떤 작은 마을의 명칭입니다. 이 사과와인이 PGI인증을 받았다는 것은 제조 지역은 Kerisac 마을로 전통적 방식으로 제조를 하는데, 원료로 쓰는 사과는 Kerisac 마을의 사과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혹은 역으로 원료로 쓰는 사과는 Kerisac 지역의 사과인데, 제조를 다른 곳에서 한 경우도 PGI인증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만약 이 사과와인이 PDO인증을 받은 사과와인이라면 원료로 쓰는 사과도 Kerisac 마을의 것이고 제조도 Kerisac에서 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니 PDO 인증 제품이 더 귀하고 비쌀 수 밖에 없습니다.

TSG 인증은 특정 지역의 전통적 레시피로 만든 식품에 부여하는 인증마크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나폴리 피자입니다. 어떤 피자를 나폴리 피자라고 하려면 그에 합당한 정해진 레시피를 써야지만 나폴리 피자라고 이름을 붙일 수 있다는 거지요. 그걸 지키지 않고 나폴리 피자라고 이름 붙혀 판매하면 큰 벌금을 물 수 있습니다. 

빠리의 헝지스 농산물 도매시장에 가보니 몇몇 농산물들이 PDO인증을 받은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오리지널 농산물을 오리지널 지역에서 오리지널 방식으로 생산 (및 가공)을 했다는 것입니다. 자긍심이 있고 믿을만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프랑스의 경우 예전 AOC 인증이나 현행 PDO인증을 받은 농식품들은 일반 여타 농산물보다 약 2.5배의 가격을 받으며 팔리고 있습니다. 소비자들이 그 가치를 인정해 주는 것이지요. 

이런 지리적표시제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그 지역에서 나는 농식품의 독점적인 지위를 인정해 주어서 그 지역의 산업과 주민들에게 권익이 돌아가게 하는 것이 첫번째입니다. 두번째 품질규정을 통해 품질관리를 꾸준히 일관성있게 해 나감으로써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고, 지역에 국한한 인증이므로 지역의 산업의 발전과 지역 고용창출에 기여한다는 장점이 있지요. 

이 지리적표시제가 가장 매력적인 이유는 지역의 산업 클러스터화를 통한 지역의 발전과 아주 밀접한 관계에 있다는 거지요. 보르도 와인을 만들고 팔고 싶다면, 방법은 딱 하나 밖에 없습니다. 보르도로 들어가서 와이너리를 건설하고 보르도 와인 품질 규정에 맞게 농사짓고 와인을 제조해야만 합니다. 다른 방법은 있을 수 없습니다. 반드시 보르도로 가야만 하지요. Kerisac 사과와인을 제조하고 싶다면 현실적인 방법은 하나 밖에 없습니다. Kerisac 지역으로 이주하여 공장을 짓는 거죠. 한국에서도 고가로 팔리고 있는 명품 버터인 Isigny 버터를 생산, 판매하고 싶다면, 프랑스 Isigny로 이주해서 공장을 지어야 합니다. 당연히 그 지역이 산업 클러스터화되고 고용 창출이 되고 인구가 늘게 되겠지요. 이 부분이 지리적 표시제의 가장 멋진 부분이고, 마이클 포터의 CSV이론과 아주 밀접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지역의 발전, 고용 창출, 종의 다양성 등에 기여하는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면서, 동시에 비즈니스 가치를 창출하고, 결과적으로 지역의 클러스터화를 이룰 수 있습니다. 포터가 이야기하는 CSV의 3단계입니다.

또한 지리적표시제는 소비자에게는 좋은 품질의 오리지널 제품을 제대로 소비할 수 있는 인증서 역할을 합니다. 유럽에는 이미 25개국이 이 제도에 동참하여 2800여개 제품이 지리적표시제 인증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 지리적 표시제 인증 마크를 이해하는 까다로운 소비자가 되면, 단지 제품만을 소비하는게 아니라 지역의 역사와 전통이 고스란이 담긴 고품질의 오리지널 제품을 제대로 즐기며 소비하는 것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