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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훈 교수의 맛있는 CS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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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탈리아 남부 아말피 해안의 레몬과 리몬첼로. 작성자 문정훈 작성일 2017.06.06
이탈리아는 로컬푸드, 즉 지역 음식의 천국입니다. 이탈리아 식문화의 핵심이 바로 이 '로컬푸드'죠. 이 로컬푸드는 해당 지역에서 생산되는 농산물로 지역의 레시피로 만드는 음식을 뜻합니다. 이태리의 로컬푸드는 무엇이고, 왜 로컬푸드가 중요할까요? 그 출발은 지역 특유의 식재료 생산, 즉, 지역 농업에서 시작합니다.

<이탈리아의 식문화의 근간은 '로컬푸드'이고, 그 출발은 지역 특유의 식재료 생산, 즉, 지역 농업에서 시작한다>

나폴리에서 소렌토로, 또 소렌토에서 아말피로 이어지는 해안 도로를 따라 달리다 보면 딱 두가지의 작물만 눈에 보입니다. 올리브 나무와 레몬 나무입니다. 이탈리아 최고의 관광지로 손꼽히는 소렌토와 아말피는 예로부터 산기슭에 올리브 농사와 레몬 농사를 짓는 농업지역이었고, 또 생계를 위한 어업을 하는 지역입니다. 이 지역이 관광지로 알려지기 시작한지는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아름다운 아말피 해안>

<아말피 해안에서 시선을 내륙 쪽으로 돌리면 산기슭을 따라 펼쳐진 레몬 농장들이 눈에 들어 온다>

아름다운 아말피 해안을 따라 가면 역시 눈 앞에 펼쳐진 멋들어진 해안과 푸르른 바다에 눈이 가긴 하지만, 시선을 돌려 육지 쪽을 바라보면 곳곳에 레몬 나무와 올리브 나무들이 빼곡합니다. 그리고 이 아말피 인근 동네 어느 가게에 들어 가봐도 레몬과 관련된 제품들과 올리브유가 가장 앞 매대에 나와 있습니다. 레몬과 관련하여 레몬 사탕, 레몬 비누, 레몬 오일, 레몬 쵸컬릿 등 여러가지 제품들이 많습니다만, 이 지역에서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역시 리몬첼로(Limoncelllo)입니다. 레몬으로 만든 술이지요. 리몬첼로는 무려 40도나 되는 독주입니다. 달콤한 맛과 함께 상큼하면서 강렬한 레몬향이 그 특징입니다. 이탈리아에서는 주로 식후에 마시게 되는데, 소화제 역할을 한다고 믿고 있지요. 

<아말피 시장의 식료품 가게. 아말피 해안의 특산품인 레몬, 그리고 그 레몬을 가공한 다양한 식품들을 판매하고 있다. 레몬으로 만든 이 지역의 술 리몬첼로는 사진 윗쪽에 배치되어 있다>

아말피 시장의 상인들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 이 지역에서 생산한 리몬첼로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합니다. 이 아말피 해안 지역의 레몬은 유럽에서도 인정받는 레몬이고 이 레몬으로 만들어야 제대로 된 리몬첼로라고 강하게 주장합니다.  

'공항이나 다른 도시에서 파는 건 공장에서 만든거야. 레몬 말고, 레몬 향도 첨가해. 이거 봐!'라고 하면서, 한 상인이 자기네 매대에 올려져 있는 제품들 중에서 이 지역에서 생산한 것이 아닌 타지에서 생산한 리몬첼로 병을 들고 손가락으로 딱 찍어서 보여줍니다. '레몬 향'이라는 성분표시를 가르키고 있습니다. 이런 건 진짜가 아니라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다시 매대로 갑니다. 그리고, 다시 여러 병들을 들고 나와서 저에게 더 설명을 합니다. '이거 봐. 색이 다르지? 레몬 품종에 따라서도 다르지만, 어느 지방에서 난 레몬이냐에 따라서도 색도 다르고 맛도 달라. 이건 여기 아말피에서 나는 레몬으로 만든거야. 최고지.' 이 아말피 해안의 레몬에 대한 강한 자부심이 느껴집니다. 이어서 다른 리몬첼로 한 병을 보여주면서, 소렌토 쪽을 가리키며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이건 옆동네에서 만든 건데. 이것도 괜찮아.' 
<아말피 해안의 레몬으로 빚은 리몬첼로>

아말피 해안의 레몬은 이태리에서 가장 유명한 로컬 레몬 중의 하나입니다. 이태리에서는 여섯 지역의 레몬이 EU의 '지리적 표시제'에 등록되어 있습니다. 특정 농산물이나 음식이 지리적 표시제에 등록되었다는 것은 그 지역이 예로부터 해당 농산물, 해당 음식으로 유명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말피 해안의 레몬, 소렌토 레몬 둘 다 각각 지리적 표시제에 등록되어 있습니다.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다른 레몬과는 분명히 차별이 된다는 겁니다.

<이탈리아 남부에서는 식후에 리몬첼로를 작은 샷 잔에 따라서 소화를 돕는 용도로 식후에 마시는 문화가 있다>

아밀피에 레몬이 처음 정착된 것은 약 1,000년 전의 일입니다. 중동에서 지중해를 거너 왔지요. 하지만 당시에는 작고 맛도 떨어져서 식용으로는 부적합했습니다. 이를 아말피의 농부들이 이태리 남부 토착 오렌지들과 이종 교배를 시도하면서 아말피 해안만의 특유한 레몬 품종들이 만들어 집니다. 아말피의 독특한 레몬들은 이런 품종적 특성도 있지만, 아말피 해안의 해풍과 지중해성 기후의 특성,또 토질의 특성도 반영이 된 결과물인 것이지요. 그리고 그 농부들은 아말피 해안의 레몬으로 이 지역만의 리몬첼로를 빚어 먹습니다.
<아말피 해안의 레몬과 전통적인 리몬첼로 병과 잔>

아말피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차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소렌토에서는 소렌토만의 레몬이 있습니다. 소렌토 레몬은 아말피 레몬보다 좀 더 새콤하고, 톡 쏘는 향이 더 강합니다. 하지만 이들을 섞어 놓으면 구분하는 것은 매우 어려워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동네 사람들은 이를 명확히 구분하여 판매하고, 또 명확히 구분하여 사먹고 있습니다. 이 동네 사람들은 리몬첼로를 빚을 때에도 두 레몬을 섞는 법이 없습니다. 반드시 구분하고, 병 라벨에도 명확히 어느 지역의 레몬을 썼는지를 표기합니다. 이런 사소한 차이를 까다롭게 구분하고, 또 지리적 특성의 차이가 농산물과 조리 방식에 어떤 차이를 만들어 내는 지에 대해 다들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게 바로 로컬푸드 문화의 출발이지요. 이탈리아 음식 문화의 근간입니다.

<소렌토 레몬. 육간으로 아말피 해안 레몬과 구분하는 것은 매우 힘들지만, 이 동네 사람들은 어쨌든 구분하여 판매하고, 구분하여 구매한다>

호텔로 돌아와서 TV를 켰습니다. 요리 대결이 벌어 지고 있었습니다. 이태리식 쿡방이었는데요. 이태리 중부 지역에서 많이 먹는 작은 만두인 또르뗄리니를 두고 두 지역이 요리 대결을 펼치는 것을 실황 중계를 하고 있었습니다. 볼로냐(Bologna)의 대표 셰프는 볼로냐 방식의 또르뗄리니를, 모데나(Modena)의 대표 셰프는 모데나 방식의 또르뗄리니를 요리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지역의 또르뗄리니가 더 맛있느냐를 두고 명예를 건 승부가 벌어지고 있었지요. 실제 볼로냐와 모데나는 지리적으로 매우 가까워서 우리나라로 치면 수원과 용인 정도의 거리입니다. 서로 인근해 있죠. 나중에 두 지역에 가서 각 지역의 또르뗄리니를 먹어 봤는데, 정말 미묘한 정도의 차이가 느껴질 뿐이었습니다. 눈 감고 먹은 후, 무엇이 모데나식인지, 무엇이 볼로냐식인지 고르라고 하면 구분하기 어려울 것 같았습니다. 두 지역 레시피의 차이는, 재료는 거의 같습니다만, 모데나 방식의 또르뗄리니는 만두소에 고기의 비율이 조금 더 높고, 또 모데나 방식의 경우 만두소를 넣을 때 고기를 먼저 한번 익힌 상태로 넣는다는 차이가 있는 정도입니다. 눈으로 보기엔 똑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탈리아 사람들은 이 차이가 매우 중요한 차이고, 두 지역의 문화를 구분하는 중요한 척도로 받아들입니다. 로컬푸드 문화가 생활 속에 들어 와 있는 거지요.
<라구 소스로 버무려 놓은 볼로냐식 또르뗄리니>

로컬푸드가 왜 중요할까요? 로컬푸드를 먹으면 더 건강해 질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로컬푸드와 건강은 별 관련이 없습니다. 로컬푸드의 핵심은 '다양성'입니다. 문화적 다양성, 종의 다양성을 가지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 쌀 이야기를 잠깐 해볼까요? 소비자들이 쌀의 품종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각 지역에서 생산하는 쌀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면, 시간이 가면 갈수록 다양한 쌀의 품종은 사라지게 되고 생산성이 좋은 쌀 몇 종만 남게 될겁니다. 다양성이 줄어드는 거죠. 소비자들이 적당한 품질의 저렴한 쌀을 선호하니 그렇게 되는 것이죠. 지금 그렇게 되고 있습니다. 제주도만 하더라도 제주도의 밭에서 키우던 제주도 특유의 쌀 품종이 있었는데, 생산성이 좋지 않으니 사람들이 기르지 않기 시작했고 이제는 그 종 자체가 사라져 버렸다고 합니다. 멸종한 거지요. 그래서 우리에게 생산성이 좋은 쌀 몇 종만 남았는데, 만약 그 쌀이 기후 변화에 취약하다거나, 특정 질병에 약하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우리는 큰 위기에 빠지게 될겁니다. 이를 극복하는 중요한 접근이 다양성의 확보입니다. 지역의 다양한 음식 문화는 다양한 식재료를 필요로 하고, 다양한 식재료는 다양한 농산물 생산과 연계됩니다. 다양한 농산물, 다양한 품종을 재배해야 할 이유를 만드는 것은 인류의 미래와도 큰 관련이 있습니다. 다양성을 소비합시다. 로컬푸드를 소비하는 것은 다양성을 소비하는 것입니다.
<최근 국내 마트에서 구매할 수 있는 사과는 홍로와 부사 정도 밖에 없다. 소품종 대량 생산에 초점을 맞춘 농업 생산 정책은 다양성을 훼손했다>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의 한 마트의 사과 매대. 12종의 사과를 내 입맛에 맞게 골라 먹는 문화가 정착되어 있다. 우리에게도 다양한 선택의 기회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