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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훈 교수의 맛있는 CS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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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지속가능한 음식에 대한 고민, 스페인의 베요타 등급 하몽의 모든 것. 작성자 문정훈 작성일 2017.04.18
          

슬로우 푸드의 대명사 스페인 이베리코 하몽

돼지고기를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 하나만 고르라면, 저는 단연 '스페인식 하몽으로 만들어 먹는다.'라고 답할 겁니다. 돼지의 뒷다리를 열을 가하지 않고, 단지 소금으로만 간을 맞추며, 2년간의 숙성과정, 즉, 곰팡이와 시간의 힘을 빌어 완성하는 극강의 슬로우 푸드지요. 그렇다면 단지 그 가공 기술만 있으면 스페인식 하몽을 만들 수 있을까요? 실은 이태리의 프로슈토, 프랑스의 잠봉, 독일의 슁켄도 전부 돼지 뒷다리를 염장해서 만드는 음식입니다. 그런데 왜 스페인의 하몽이 유독 더 특별하게 대접받고, 또 가격도 무려 1kg에 10만원이 넘는 초고가로 판매되고 있을까요?

우리 서울대 푸드비즈니스 랩은 이 하몽에 대한 궁금증을 풀기 위해 스페인 남부의 작은 마을 아라세나(Aracena)의 산속 한 켠에 위치한 흑돼지 농장을 찾아 갔습니다. 이 작은 농장에서는 돼지도 기르고 이것을 직접 가공하여 맛있는 하몽을 만듭니다. 자, 그러면 하몽에 대한 모든 것을 한번 알아 볼까요?

<스페인 남부의 작은 마을 아라세나(Aracena)>

<우리가 방문했던 200년 역사의 이베리코 흑돼지 농장의 마당>


이베리코 하몽은 왜 다른가?

이베리코 하몽이 다른 돼지 뒷다리 육가공품들과 분명히 구분되는 이뮤를 살펴 봅시다. 먼저 스페인식 이베리코 하몽을 만들기 위해선 먼저 이베리아 반도 토종 돼지 품종인 이베리코(Iberico)종의 돼지가 필요합니다. 검은 털과 검은 발톱이 특징이죠. 하지만 걔네들 중에선 네 발톱이 모두 검은 녀석들도 있지만 하나는 흰 발톱인 애들도 있습니다. 이 이베리코 종 돼지의 선조는 멧돼지에 가까웠다고 합니다. 실제 멀리서 보면 멧돼지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이베리코 하몽'에는 이 이베리코 품종의 돼지를 써야 합니다. 다른 품종의 쓰면 '이베리코'라는 표현을 쓸 수가 없습니다.

<숲에서 방목되어 뛰어 노는 이베리코 흑돼지>


두 번째 중요한 것은 이 돼지들을 방목해야 한다는 겁니다. 물론 모든 이베리코 하몽이 다 방목한 흑돼지를 쓰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최고 등급인 베요타(Bellota) 등급의 하몽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이베리코 흑돼지들이 이베리아 반도에서 자생하는 도토리 나무의 도토리와 버섯 등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면서 먹을 수 있어야 합니다. 게다가 돼지 한마리당 무려 1헥타의 대지를 확보해야만 이 최고 등급인 '베요타' 등급을 딸 수 있습니다.

자, 이제 하몽의 등급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볼까요? 높은 등급부터 이야기 하자면, 베요타 (Bellota) 등급, 쎄보 데 깜뽀 (Cebo de campo) 등급, 쎄보(Cebo) 등급로 나뉩니다. 베요타(Bellota)는 스페인으로 '도토리'를 의미합니다. 이 베요타 등급이야 말로 제대로 된 전통 하몽이죠. 3개월 이상된 이베리코 흑돼지를 도토리 나무가 있는 산에 방목을 하는데, 이 녀석들은 산에 돌아 다니면서 땅에 떨어진 도토리를 주식으로 하고 버섯과 풀 등을 뜯어 먹고 삽니다. 전 세계의 대부분의 돼지들이 축사에 갖혀서 살고 있는데, 이 녀석들은 아주 행복한 녀석이지요. 많이 먹을 때는 하루에 도토리를 12키로와 풀 5키로를 먹어야 1키로가 찐답니다. 요 녀석으로 만든 하몽이 정통 하몽, 즉, 베요타 등급의 하몽이 되겠습니다.

스페인어로 쎄보(Cebo)는 사료라는 뜻입니다. 깜뽀 (Campo)는 들녘이란 뜻이죠. 그래서 베요타 등급의 아래 등급인 쎄보 데 깜뽀(Cebo de campo) 등급은 방목하면서 사료를 먹인 흑돼지로 만든 하몽입니다. 그리고 가장 일반적인 등급인 쎄보(Cebo) 등급은 축사에서 사료를 주며 기른 흑돼지로 만든 하몽입니다. 물론 훌륭한 맛의 식재료지만, 돼지들의 행복도를 생각한다면 베요타 등급을 좀 더 애정해 주면 좋겠지요? 비록 베요타 등급의 하몽이 좀 더 비싸긴 합니다만.

이베리코 하몽을 만들기 위한 세번째는 가공의 규정인데, 하몽을 만들 때에 바닷소금말고는 그 어떤 재료도 쓸 수 없습니다. 농장에서 기른 흑돼지는 인근의 도축장으로 보내져서 도축되고, 해체된 다리는 다시 농장으로 되돌아 옵니다. 그러면 농장에서는 좋은 바닷소금으로 염장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서늘하고 바람이 잘 드는 곳에 매단 채, 곰팡이의 힘을 빌어 천천히 2년간 완성시킵니다. 슬로우 앤 슬로우죠. 곰팡이의 힘은 감칠맛과 달콤함을 그 극단으로 끌어 올립니다. 우리가 방문했던 농장에선 도축을 제외한 모든 과정을 농장 내에서 진행하고 있습니다.

<농장 내에서 바닷소금으로만 염장되어 있는 하몽>


<농장 내 숙성고에서 대롱대롱 매달린 채 2년간 숙성되는 하몽>


우리가 방문한 농장 뒷편의 넓디 넓은 대지에선 이베리코 흑돼지들이 행복하게 뛰어 놀고 있습니다. 이 돼지들은 완전 방목하는 베요타 등급의 돼지일까요, 아니면 방목하되 사료를 지급하는 쎄보 데 깜포 등급의 돼지일까요?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요? 사실 꽤 간단하게 알 수 있습니다. 들판에서 놀고 있는 돼지에게 다가가 보는 겁니다. 평상시 인간으로부터 사료를 받아 먹은 경험이 있는 돼지들은 사람이 접근하면 반갑게 다가 온다고 합니다. 밥 준다고 생각하는 거지요. 그러면 쎄보 데 깜뽀 등급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베요타 등급의 돼지들은 인간이 가까이 오면 거리를 두고 경계합니다. 이 농장의 돼지들은 밥달라고 뛰어 오지 않습니다. 오히려 '내 도토리 주워 먹으러 온 인간들 아니야?'라며 살짝 경계합니다. 베요타 등급의 흑돼지인가 봅니다.

<사람이 다가가면 경계하는 완전 방목 이베리코 흑돼지들. Bellota 등급의 맛있는 하몽으로 거듭날 것이다>



하몽을 먹어 보자

이베리코 돼지들과 뒤섞여 뒷산을 산책하다가 다시 농가로 돌아 왔습니다. 그리고 하몽을 먹었지요. 두 종류의 하몽을 먹었습니다. 하나는 베요타 등급, 다른 하나는 쎄보 데 깜뽀 등급입니다. 자, 아래 두 사진 중 무엇이 베요타 등급일까요? 우리 나라에서는 흔히 고기의 마블링이 고루 많이 분포된 고기를 더 고급으로 치지만, 스페인에선 그렇지 않습니다. 마블링이 적고 육색이 분명한 두 번째 하몽이 훨씬 더 비싼 베요타 등급의 하몽입니다. 사료를 먹은 쎄보 데 깜뽀 등급의 돼지는 고기에 마블링이 고루 퍼져 있지만, 자연 방목 상태에서 도토리와 버섯을 주워 먹은 돼지는 마블링이 오히려 적고 강렬한 붉은 색의 살코기와 피부쪽으로 두툼한 지방이 몰려 있습니다.

 

<이베리코 하몽, 쎄보 데 깜뽀 등급>







                                                            <이베리코 하몽, 베요타 등급>


하몽의 맛은 어떨까요? 역시 Bellota등급의 하몽은 극강의 짭쪼름하고 풍부한 감칠맛과 함께 달콤한 맛이 입안을 감쌉니다. 그리고 혀 아래에 뻑뻑한 느낌이 옵니다. 이 기분 좋게 '뻑뻑한' 느낌을 어떻게 글로 설명해야할 지 모르겠군요. 그리고 이 뻑뻑한 느낌이 조금 곤란하고 느껴질 때 쯤, 스페인 남부에서 나는 셰리 와인을 입 속에 한 모금 넣습니다. 이 뻑뻑함이 사르르 녹아서 향긋한 셰리 와인과 함께 목뒤로 넘어 갑니다. 아, 이게 수 백년간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기가 막히게 어울리는 궁합이로구나..라는 생각이 들 때 쯤, 이미 새로운 하몽 한점이 제 혀 아래를 또 기분 좋게 뻑뻑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어쩔 수 없이 한 모금의 셰리를 추가 투입. 끝이 없습니다.


<맛있게 저며진 베요타 등급 이베리코 하몽>


하몽의 맛은 어떤 하몽을 썼느냐가 기본적으로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먹을 때 어떻게 잘랐느냐가 중요합니다. 즉, 아무리 좋은 하몽이더라도 다리에서 제대로 저며내지 못하면 맛이 떨어집니다. 하몽은 절단용 스탠드에 제대로 걸어두고 먹을 때마다 조금씩 저며서 먹습니다. 날이 아주 얇고 잘 휘는 칼로 정교하고 얇게 저며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스페인의 각 지역에서는 하몽 커팅 마스터를 매년 선발할 정도로 이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마지막 사진은 이 Aracena 동네 최고의 하몽 커팅 기술자인 Antonio Fernandez씨입니다. 잘 보시면 지금 하몽을 뒤집어서 커팅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으실텐데요. 이 부위는 바비야(Babilla) 부위입니다. 스페인 북부 카딸루냐 지역 사람들이 특히 선호하는 부위이죠. 보통은 반대편 쪽의 푼타(Punta)나 마싸(Maza)부위를 더 선호합니다. 부위마다 맛과 식감이 다릅니다.



<저며 낸 하몽의 등급별, 부위별 형태>


<하몽의 부위>


돼지고기를 미디엄 레어로?


다시 숙소인 세비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숙소 인근의 식당으로 갔습니다. 오늘 낮에 이베리코 흑돼지 농장을 들렀으니, 저녁엔 이베리코 흑돼지 구이를 먹어야 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나라에서 우리가 먹는 돼지고기는 주로 요크셔, 듀록, 랜드레이스라는 세개의 품종을 섞은 교잡종입니다. 사료 투입 대비 생산성이 뛰어난 돼지들입니다. 반면에 스페인의 토종 돼지인 이베리코는 생산성이 좀 떨어집니다. 이베리코 흑돼지는 방목 상황에서 도토리 15키로 먹아야 겨우 체중 1키로가 증가하는 정도지요. 그러니 가격이 비쌉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보통 돼지를 6개월 정도 사육하고 115키로 정도가 되면 도축하여 식용으로 씁니다. 반면에 방목 이베리코 돼지는 17개월에서 24개월 정도를 사육한다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 150키로가 되면 도축하여 먹습니다. 좀 더 성숙한 돼지를 먹는 거죠. 그래서 맛도 좀 더 중후합니다.


저녁식사로 돼지 목살 스테이크를 시켰습니다. 그랬더니 아래의 사진과 같은 음식이 나왔죠. 별 생각없이 먹다 보니, 육질과 육향도 좀 소고기 같아서 음식이 잘못 나왔나..싶었습니다. 게다가 피가 흐르는 미디엄 레어 정도로 조리되어서 나왔으니 더더욱 소고기일 것이라 생각했죠. 직원을 불러 이야길 했더니, 저게 돼지고기가 맞답니다. 우리 학생들은 돼지고기를 덜 익혀 먹어도 되냐고 물었습니다만, 직원은 웃으며, '스페인 돼지는 이렇게 먹어도 돼'라고 답하고 갔습니다. 미디엄 레어의 이베리코 돼지 목살은 아주 맛있었습니다. 실은 우리나라 돼지도 아주 깨끗하게 잘 사육되고 관리되기 때문에 1990년대 이후 단 한번도 기생충이 나온적이 없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많은 식당들도 이제는 돼지고기 요리를 설익혀 냅니다. 그래야 더 맛있기 때문이죠. 요즘 우리나라에서 돼지고기 바짝 익혀 먹으면? '아재'취급 받지요.

<미디엄 레어 정도로 익힌 이베리코 목살 스테이크. 이제는 돼지고기 바짝 익혀 먹으면 아재 취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