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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SV 리더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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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CSV는 더불어 사는 것 - 홍성열 마리오아울렛 회장.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7.10.24
첨부파일 CSV19_홍성열 마리오아울렛 회장.pdf (341.26 KB)

[CSV 리더를 만나다]


■ CSV는 더불어 사는 것

■ 홍성열 마리오아울렛 회장





들어가며

옷이 필요해질 때마다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곳이 있다. 가산디지털단지 역 근처에 위치한 금천 패션타운이다. 브랜드 상품을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는 아웃렛이 여러 개 있을 뿐 아니라 유명 의류회사들의 상설매장들도 밀집해 있기 때문이다.

장년층 중에는 이러한 아웃렛 거리가 낯설게 느껴지는 이들도 상당할 것이다. 공돌이, 공순이들의 삶의 현장, 70년대 우리나라의 고속성장을 견인했던 섬유산업의 첨병, IMF 외환위기 이후 입주 업체들의 연쇄 도산이 이어졌던 ‘구로공단’이 오늘날의 패션타운 일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드라마틱한 변화의 시발점에는 대한민국 최초의 패션 아웃렛, ‘마리오아울렛’이 있다.
  
한국 여성 의류 브랜드의 신화 <까르뜨니트>의 설립자, 무너진 공장 지대를 세련된 패션 거리로 만든 개척자, 마리오아울렛 홍성열 회장을 만났다.   


대담

필자: 먼저 대표 질문부터 드리겠습니다. CSV는 기업의 이익과 사회적 가치를 동시에 추구하는 비즈니스 모델입니다. 기업가 입장에서 수월하지는 않을 경영 철학일 텐데요. 홍성열 회장님께서 생각하시는 CSV란 무엇입니까?

 

홍성열 회장(이하 홍 회장): 인터뷰를 할 때마다 비슷한 질문을 받는 것 같습니다. 기업인으로서는 좀 민망한 마음이에요(웃음). 사회공헌, 동반성장, 일하기 좋은 기업, 지속가능경영, CSV…… 본질적으로 보면 다 같은 방향을 추구하는 것이지 않습니까? 결국 더불어 살자는 거죠. 그런데 아직까지 기업들
이 국민적 기대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이러한 경영 철학들이 계속해서 나오는 것 같아 속이 좀 쓰리죠(웃음). 
저는 CSV가 특별한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독식하지 말고, 소외시키지 말고, 속이지 말고. 근로자들, 납품업체들 눈물 나게 하는 일 없이 기업을 경영하는 일, 그게 CSV라고 봐요.


 

필자: 제조업으로 사업을 시작하셨으니, 근로자와 생산업체에 대한 나름의 소회가 있으신 듯합니다.   


 

홍 회장: 70년대 이 근방에서 제조하던 사람들, 거기 근로자들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먹먹해요. 여기가 어딥니까? 구로공단이에요. 지금이니까 저희 건물뿐 아니라, 다른 유통 대기업들도 입주하고 대단위 쇼핑 단지가 됐죠. 나라에서 디지털산업단지로 지정을 하면서 고층 오피스 건물들도 수두룩해졌고요. 하지만 30년 전만 해도 방직공장, 섬유, 가발, 봉제 제품 창고가 이 동네의 전부였습니다. 새벽 같이 출근한 근로자들이 정신 없이 일하다가 점심 도시락 한번 까먹고, 공장 구석에 앉아 꾸벅꾸벅 잠깐 졸고, 다시 또 일하고. 사장들은 그렇게 생산한 제품들 수출해보려고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했습니다. 저만해도 바이어가 조금이라도 불만족스러워하면 한달음에 날아가서 고쳐주고 했습니다. 발품 팔아가며 원단 찾고 최신 트렌드 공부해가면서 해외 시장을 개척했습니다. 그 당시 이곳에 있었던 사람들 중에 사연 한두 개 없는 사람 없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맨손으로 일군 곳이에요, 여기가.


 

필자: 구로공단이 쇠락하게 된 계기가 IMF 외환위기였을까요?


 

홍 회장: 솔직히 동력 자체는 꺼진 상태였다고 봐야죠. 강점이었던 가격 경쟁력이 인건비 상승으로 떨어지고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연착륙할 수도 있었던 구로공단에 IMF 사태는 재앙이었습니다.

제조업은 업태 특성상 거래선 하나가 무너지면 연쇄 부도 위험이 상대적으로 커요. 판매가 안되면 직원 급여는 물론 원자재 납품업체에도 줄 돈이 없죠. 그렇게 되면 공급업체들도 줄줄이 도산하게 돼요. IMF는 그래서 무서웠습니다. 여기 구로공단 의류 창고에는 재고가 말 그대로 넘쳐흘렀어요. 있는 건 안 나가고 나간 건 다시 들어오니까요. 그걸 보고 있자니 아깝고 안타깝더라고요. 저 처치 곤란한 재고들을 한데 모아서 판매해보면 어떨까. 다 유명 브랜드 제품인데.


 

필자: 마리오아울렛의 시작이군요(웃음).


 

홍 회장: 그렇죠(웃음). 같은 시대를 살아온 구로공단의 업체들이 연달아 무너지는 걸 보고 있는 게 괴롭기도 했고, 우리 브랜드 경쟁력에 자신감도 있었어요. 유명 메이커의 의류와 잡화들을 한군데에서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는 아웃렛 모델은, 이미 미국에서 검증된 유통 형태이기도 했고요.


 

필자: 황량한 공장 지대에 아웃렛 건물을 짓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홍 회장: 거기에 대해서는 제가 할 말이 많습니다(웃음). 한 명도 안 빼놓고 전부 다 반대했거든요. 은행에서는 대출이 어렵다, 컨설팅회사에서는 구로공단에 누가 쇼핑을 하러 오느냐, 왕래하며 지냈던 사장님들도 그게 되겠느냐, 안 된다…… 미쳤다는 말 정말 많이 들었습니다. 솔직한 말로 그때 격려해 준 사람이 하나라도 있었으면, 제가 절대로 안 잊어버리고 어떤 형태로든 보답했을 겁니다(웃음). 하지만 밀어붙였습니다. 제 나름대로는 성공에 대한 확신이 있었거든요. 1999년 부지 매입하고 2001년도에 마리오아울렛 1관을 그랜드오픈 했어요. 막상 문을 여니까 건물 무너진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사람이 몰렸지요.


 

필자: 마리오아울렛이 성공하면서 이 일대가 쇼핑 단지로 진화했습니다. 대규모 공장 단지가 채용을 통해 일자리를 창출하는 경우는 간혹 있지만, 지역경제의 생태계 자체가 제조에서 소비로 바뀐 경우는 드물 것 같은데요. 


 

홍 회장: 나비효과가 있었던 거 같아요. 솔직히 지역경제를 활성화 시켜야겠다고 벌인 일들은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직접 발로 뛰어서 원단 확보하고 디자인해서 만든 옷이 남의 브랜드로 판매되는 게 싫어서 <까르뜨니트>를 런칭했고, 그렇게 생산한 우리 제품을 직접 유통하고 싶어서 마리오아울렛을 세웠던 거니까요.

그런데 마리오아울렛이 잘 되니까 상설매장들이 들어오고 손님들이 외지에서 찾아 드니까 식당이랑 카페들도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쇼핑하러 왔는데 식사도 해결하고 놀 수 있으니, 유입 인구는 갈수록 급증했죠.

그 즈음 마리오아울렛 2관, 3관이 연달아 문을 열면서 본격적인 쇼핑 단지가 되었습니다. 규모가 커지니 구비한 제품 라인들도 다양해지면서, 아예 날을 잡고 찾아와서 식구대로 옷을 사는 가족 단위 손님들도 늘어났죠. 그러니까 아이들 놀 거리도 필요해졌습니다. 아이들이 엄마아빠를 보채기 시작하면 쇼핑을 할 수가 없으니까요.


 

필자: 다양한 일자리가 생겨났겠네요.


 

홍 회장: 그렇죠. 지역사회 입장에서도 반가운 일이었겠지만, 마리오아울렛 입주 업체들 역시 채용이 급했습니다. 그래서 금천구청과 손을 잡고 일자리 창출 MOU를 맺었습니다. 구청 대강당을 빌려서 취업 박람회 같이 현장에서 면접도 보고, 상담도 했습니다.

우리가 열심히 일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지역이 발전하고 이웃들도 함께 먹고 살 수 있는 시장이 만들어진 겁니다. 마리오아울렛이 구로공단 발전에 일말이라도 도움이 된 게 있다면, 정말이지 자랑스럽고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필자: 아웃렛 업계 최초로 사내 어린이집을 운영하신다고 들었습니다.  


 

홍 회장: 저희 직원들 중에 여성 비중이 높거든요. 법적 의무는 아니라고 하지만, 직원들이 고생하는 게 빤히 보이는데, 해야죠. 

어린이집은 저희 직원들뿐 아니라 협력사 직원들이랑 지역주민들에게도 오픈되어 있습니다. 맞벌이 가정 비중이 계속 높아진다는데, 다같이 함께 이용하면 좋지 않겠습니까? 요새 젊은 엄마들 보세요. 애 때문에 종일 노심초사하고 일 끝나면 본인도 힘든데 아이 데리러 간다고 정신 없이 뛰어요. 너무 안쓰럽잖아요.


 

필자: 말씀 듣다 보니, 지역, 이웃, 함께…… 이런 단어들을 자주 쓰시는 것 같습니다.   


 

홍 회장: 그런가요(웃음). 지역에 애정이 있기는 합니다. 제 머리 좀 보세요. 한 올도 남김없이 하얗게 셌죠. 저도 단돈 200만원 들고 맨땅에서 사업을 시작했던 청년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이날까지 공장 근로자들이며 옆 공장 사장님들과 부대끼며 살아온 겁니다. 혼자서는 못해요. 사람은 무엇이 됐든 영향을 주고 받을 수밖에 없고, 성장과 발전도 그 과정 속에서 이루어지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힘들 때 술 한 잔 함께 기울이고 서로 붙잡고 하소연도 하고…… 그런 이웃들 없이 어떻게 여기까지 올 수 있었겠습니까?

겸손이 아니라, 솔직히 대단한 일을 한 건 없어요. 김장이 됐건, 바자회가 됐건, 일자리가 됐건…… 그냥 우리가 할 수 있는 깜냥 내에서 이웃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일들을 꾸준히 해 온 것뿐입니다. 오히려 회사 규모가 커지면서 이웃들과의 스킨십과 친근함은 잃어버리지 않았나, 그게 아쉽고 또 미안한 마음이에요.

마리오아울렛 한쪽 벽에 보면 구로공단에 최초로 입주한 회사들의 창업연도와 회사 명을 새겨놓았습니다. 그것도 밀씀드린 것과 비슷한 맥락입니다. 함께 살아온 제 이웃들을 기억하려는 거죠.



 

마치며

70년대, 도약하던 한국 경제의 한 축을 이루었던 섬유 산업. 그 최전선에는 구로공단이 있었다. 그곳에서 자체 브랜드인 <까르뜨니트>로 세계적인 성공을 이룬 홍성열 회장은, 90년대 들어 사양길로 접어든 섬유 산업과 함께 쇠락한 구로공단에 다시 한 번 불을 밝혔다. 마치 유령 도시처럼 황량했을 지역에는 공장 대신 패션 거리가 들어섰고 손님들이 몰려들었다. 마리오아울렛의 설립에 국내 최초의 패션 아웃렛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게 되는 이유다.

시대는 기업가들에게 끊임없이 혁신을 요구해왔다. 섬유에서 패션으로, 다시 유통으로, 홍성열 회장은 언제나 그 시대의 선두에서 성공 신화를 써 왔다. 변화의 바람 속에서도 꾸준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이웃과 함께해 온 홍성열 회장. 그의 다음 행보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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